이어즈&이어즈 (Years and Years)
영국 / 2019 / BBC & HBO 공동제작 (국내 : 왓챠 독점 공개)
총 6개 에피소드 (러닝타임 240여분)
출연 : 엠마 톰슨, 러셀 토베이, 제시카 하인즈, 로리 키니어, 트니아 밀러 외
이게 맞나... 싶던 세상 요지경들을 집약한,
원하고 바라던 2020년 완성형 블랙코미디
+ 포인트
+ 멀게 느껴지지 않아, 납득과 공감만 가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 국제, 정치, 경제, 기술, 생활 총체를 아우르는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
+ 가족의 서사를 빌려나오는 시큰한 감동
- 포인트
- 수많은 영역을 포괄함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분야별 디테일
- 너무 리얼해서 현실까지 번져오는 불안감
왓챠익스클루시브 털어내기의 3번째 작품.
가장 마음에 들어서 애정이 새어나와 여기저기 '제발 보세요' 홍보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SF에 사회정치까지, 장르적으로 익숙지 않는 내용과 전개가 가장 큰 매력인 만큼, 스포를 하면 매력이 반감될 것이라 말을 많이 할 수는 없어 아쉽지만.... 가능한 선에서 매력어필과 추천을 해보고자 한다.
파국의 사회 묘사
브렉시트부터 도널드 트럼프 당선까지, 2016년은 우리가 옳다고 믿어오던 가치관들이 그 사상의 종주국에서 스스로 무너진 해였다. 돌이켜보면 그 땐 진짜 멸망할 것만 같았어서, 지금 살아있는 게 놀라울 정도다. (그 사이 미국 대통령 임기는 두 번째가 끝나간다...) 이어즈&이어즈는 그 시절 우리의 불안감을 핵심으로 하여, 일파만파 퍼져가는 사회 여러 면의 파국을 묘사한다.
파국의 시그니처는 역시 정치, 트럼프로 촉발된 포퓰리즘, 중우정치의 득세다. 세계 최강국이 못버티고 저리 되었는데, 다른 국가들 역시 순차적 문제에 지나지 않고 점점 잠식되어 간다. 이어즈&이어즈는 비비안 룩이 이 역할의 캐릭터인데, 존경하는 엠마톰슨 누님이 한 정치해보신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중 휘어잡는 똘끼와 현혹의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트럼프 때야 옆에서 보기에 황당했었는데... 삶이 힘들어지고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라면 이런 광대들에게 과반수의 표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 이게 더 이상은 비웃을 일도 아니고 공감을 할만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민주주의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국민들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암흑기를 겪을 것까지도...
국제적으로는, 이 정치승리자가 되어버린 자국민우선주의 국가지도자들로 인해 끝내 부활해버린 강대국 간 핵전쟁과 침략적 전쟁이 묘사된다. 결국 평화를 지키지 못한 국제연합 체제는 신뢰가 붕괴되고 무실해져가면서 각국에서 군사정변, 소수탄압, 인권 유린이 이어진다. 또한, 영국이란 배경이 있다 보니 이민과 난민 문제도 중요한 포인트로 다뤄진다. 주인공 가족의 바운더리로 불러들어와 보다 밀접하게.
경제적으로는, 일자리 대체로 인한 생계위협과 금융시장의 붕괴가 일품이다. 덕분에 재무관리사와 회계사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던 부부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친다. 그것도 단순한 곤두박질이 아니라 입 딱 벌리고 보게 되는 극적인 스토리로 연출되니 기대하고 봐도 좋다. 특히, 은행업의 붕괴에 대해 주변인들이 조소 섞인 비난이 함께하는 게 작품 전체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묘미 중 하나였다. (사실 이 드라마 제작비도 PF로 댔을 텐데 이런 스토리 끼는데도 대주들 눈치는 안 봐도 됐나 싶기도 하고...ㅎ)
일가족의 힘을 빌린 서사
이어즈앤이어즈는 처참해진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를 그 속에서 살아남아가는 일가족의 이야기로서 묘사한다. 10여년에 걸친 격변기 동안 이슈 하나하나가 개인과 가족들에게 미치는 크고 작은 영향들을 미치는 것에서 실감 나는 공감을 이끌어 낸다. 연령대, 사상, 경제력 등 너무나 다른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대가족을 화자로 두는 것은 너무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한 명의 주인공을 두는 것보다 개연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넓은 스펙트럼의 사회 이슈를 다룰 수 있게 했으며,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과 반응을 보여주는 효과도 주었다.
그리고 작품에서 느끼는 가장 큰 감동의 포인트 역시 가족의 힘에서 나온다. 사회·경제적으로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라이언스 남매들은 서로 극명하게 갈리는 가치관을 보이고, 이해 할 수 없는 서로를 넘기며 갈등을 애써 비껴 보낸다. 투표 날에는 전원이 정당이 달라지는ㅎㅎ 이 아슬아슬한 모습들은 여느 현실 가정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이 남매들의 기저에는 무조건적으로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굳은 신뢰와 가족애가 있으며,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임에도 허들이 없을 때마다 인류애가 충전된다. 많은 이들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가, 떠나고, 그 안의 관계도 재구성되는 많은 변화를 겪는데, '무너지지 않고 변화할 뿐'이라는 게 포용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된다. 사실 연례적인 가족행사가 이 액면적으로만 가족의 붕괴되지 않았다는 증거와 같이 남는데(실상은 모를 일이니 묻어두고...), 여기엔 할머니의 욕심이 가장 큰 몫을 하는 게... 오랜만에 보는 꼰대의 긍정적인 측면이 주는 감동이라 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라이언스 일가의 모습에서 보는 누구든 자신 만의 이유로 가족공동체에 대한 위로와 감동을 받아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에 이어즈 앤 이어즈를 모두에게 추천드린다.
Character
이디스 라이언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내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자신과 가족을 포기하고 대의를 쫓는 사회운동가 캐릭터 자체는 신박하진 않지만, 이어즈앤이어즈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는 이디즈에 대한 평가나 시각을 먼저 보여주는데, 이게 신선한 시작점이었다. 이런 소박한 스케일링의 접근들 때문에 일상형 군상극과 같은 매력으로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릇이 큰 캐릭터가 주는 묘미는 놓칠 수가 없는지, 결국에는 심장 쫄깃한 극적인 시나리오들을 맛보며 이디스를 너무나 응원하게 되는 흐름이 있다. 개인적인 배경으로 때문에 이 흐름에 감정이입을 아주 깊게 타버렸고, 이디스는 극불호에서 극호까지 올라와 최애 캐릭터가 되었다. 그 앞을 다 덮고도, 그녀에게서 쿨함과 멋짐으로 느끼는 걸 보면, 우리는 지금 서민과 공감을 하는 척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진짜 현실 속의 영웅이 필요한 것 같다.
대니얼 라이언스
대니얼은 우리나라의 80~90년생들이 배워 온 정의의 집약체이다. 세계화, 자유주의, 복지국가 등 우리 세대가 옳다고 배워왔고 믿어 온 신념들을 여지없이 대변하면서 통쾌함을 준다. 때문에 사상적으로는 가장 가깝게 이입을 해온 캐릭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게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혼자만 고집스러운 명확한 선호를 보여주면서, 아 이 것도 특정 문화권, 특정 세대의 중산층에게만 부합하는 하나의 사상일 뿐이겠구나 하고 느끼게 만든다. 누구에게는 그의 정의가 관용 없는 지식층의 젠체이며 독단과 꼰대로 비쳐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건 20세기에 맺어진 서구사회의 정의일 뿐이고, 그는 이에 따라 보수당에 투표를 하면서 위든 아래든 강력하게 주변에 얘기를 하니 뭐... 꼰대가 맞기도 하다. 것도 소수자인데 꼰대라는 점이 우리나라에서 보긴 아이러니한 면이다.
스티븐 라이언스 / 셀레스트 라이언스
가장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건 역시 이 둘이다. 전문직 종사자로서 중상층에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뽐내던 이 부부가 하루아침에 겪게 되는 일들은, 사실 좀만 더 무게감 있게 다루었다면 무서워하면서 숨 막혀서 울면서 보게 될 스토리들이었다. 적당히 하고 위트로 넘겨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튼 인간의 절망감을 박탈감에 비례한다고 보면 가장 큰 절망을 겪는 건 이 둘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가면서, 두 딸과 시어머니까지 함께 살아나가며 희로애락을 겪는 건... 희망적.. 이진 않고, 처연한 감동이 있다. 이렇게 살피니 이어즈앤이어즈는 캐릭터들이 현실감 있는 만큼 호감과 비호감이 정해진 것 없이 때마다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게 묘미인 것 같다.
이외에도 엠마톰슨이 열연한 비비드 룩이나, 스티븐과 셀레스트의 딸인 베서니 등 많은 매력의 캐릭터들이 있으니 다들 최애를 뽑아보시길 기원한다...
Outro
마지막 Ep, 하이라이트 직전의 프랜의 말에 이 드라마에서 느껴오는 오만가지 감성이 다 담긴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일이 뭔지 알아? 라이언스를 사랑하는 거야"
- 프랜 벡스터
그리고 끝으로, 라이언스가의 할머니, 뮤리엘의 작품 주제 대사를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모든 면에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마음에 깊게 남는 게 많다. 분명 2010년대 이후로 우리는 정치에 너무 무지하고 무책임하다. 이미 누군가의 의도된 바에 따라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 너희 잘못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전부! 너희 다! 은행, 정부, 불경기, 미국, 비비언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 탓이야!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며,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핑계를 대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 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잘못이지. 왜 그런 줄 아니? ......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했잖아? 2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서는 썼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나? 안했지? 씨근덕거리만 하고 참고 살았어......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참 잘했어,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 뮤리엘 라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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