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리맨물에서 맛본 적 없는
가장 깊은 감성과 설레임
노즈에처럼만 늙고 싶고,
누군가에게 토가와 같은 사람이고 싶다.
+ 포인트
+ 뼈아프게 공감하고 반성하게 되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 곱씹으며 눈에 새겨넣어야 할, 한 컷 한 컷 의미깊고 아름다운 작화
+ '최상의 연하', 그리고 성숙한 이들도 성숙해질 수 없는 으른의 연애
- 포인트
- 작품 완성의 주요 일부라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직장묘사나 주요소재에 녹아있는 차별적 성감수성이 주는 불편함
- (드라마) 아쉬운 공 캐스팅
영화같은 감성 작화 연출
일단 노즈에를 보고 시작하자. 아무도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게 40대 직전의 아저씨란다.
나에게 만화는 작화가 이걸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갖는지라... 아마 노즈에도 비주얼이 옆에 지나다니는 아저씨들 같으면 바로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확실히 처음 이 작품을 펼친 것은 좋아하는 수수한 그림체 계열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화려하지 않게 그리면서도 잘생김과 예쁨과 분위기가 다 표현되고, 단순한 선으로 그려졌음에도 주인공들의 수많은 심정이 표정으로 표현되는 그림체. 이게 되면 만화에서 감성이 몇배는 깊어지고, 스토리에 감정이 넘쳐흐르면서 절절함이 정수가 담긴다. 대표적인 다른 작가님을 예로 들면 요네다 코우, 코시노 정도 생각나는데... 이거 정말 쉽지 않은 거다. 그래서 너무너무 이 작가님들을 애정한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대작을 건져버렸다.
여지껏 후기들 중에서 스토리보다 형식을 먼저 언급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럴만한 작품이라서이다. 높디높은 별점의 리디 후기들 보면 "영화를 보고 온 것 같다.", "읽는데 오래 걸렸다." 와 같은 후기들이 보이는데, 정말로 그렇다. 카메라 촬영 시나리오 콘티 급의 작화 연출이 이루어진 작품이다. 일반적인 만화와 다르게 인물과 대사가 아닌 풍경, 소품, 모션 등 많은 것들이 다 컷이 되어 예쁘게 그려지는데, 의도나 의미가 허투루 담긴 컷이 하나도 없어서 한 컷 한 컷 아로새기면서 봐야 한다. 영화 같다는 의미가 딱 여기서 나오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영상화용 각색도 딱히 필요없이 만화책 그대로를 콘티로 쓰셔도 좋으셨겠다 싶을 정도. 역시나 드라마는 말 그대로 충실한 '실사화'를 만들어 냈으니, 만화 원작 보신 뒤 같이 한번 보시길 추천 드린다.
독보적인 공감대의 감성
기억상으로 어려서부터 보아 온 BL 만화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30살을 넘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손에 들어와도 영 공감안될 거 같아 안보고 덮은거 같고... 아무래도 그 땐 내가 40대 되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어서겠지.... 그런 점에서 더 놀랍지만, 내가 '올드 패션 컵케이크'의 가장 독보적인 작품성과 감동 포인트를 꼽으라면 여지껏 보지 못했던 40살 목전인 주인공의 감성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마흔 직전에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알아차렸고,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젋었을 때처럼 솔직하게 모른다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게 무서워서, 모르는 채로 새로운 일을 하다 실패하는게 무서워서, 이대로 삼십 대를 끝내는 게 무서워서,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일하며 살았던 것까지 후회하는 거잖아요?"
나도 함께 늙어 온 덕인지... 거의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 39살 주인공의 감성에 눈물까지 고일 줄은 몰랐다. 토가와가 너무 직설적으로 후드려패서 콕콕 박혀버렸는데, 이미 사회와 직장에 찌들어가면서 스스로도 느꼈던 불안들이 한 번에 올라오면서 너무 노즈에가 이해가고 공감이 가는 거다. 아무튼 이 작품은 이와 같은 노즈에의 내재적인 불안과 우울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이다. 굳이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취향적중 소재의 드라마 장르로 봤을 것도 같은데, 이게 기본적으로 로맨스니 너어어어무나도 기특한 부하가 흑심으로 공략해 나가는데 그저 예쁘고 설레는거다. 뭐라 정리해야 하나 이걸... 너무 사회적으로만 노련한 수를 절실한 패기의 연하순정공이 녹여가는 쌍방구원기? 이런, 정말 내취향의 집합체긴 했구나.
하지만 나만의 취향인 아닌게 분명한 건, 올드패션 컵케이크는 2021년 치루치루 어워드 베스트 작품 1위 수상작품이다. 일본 BL만화 연간 어워드 대상이라는 거... 가만보면 사람들 보는 눈은 진짜 똑같다. 결국 '이야기'의 정수를 찍은 명작이라면 수위나 그림체 상관 없이 모두의 인정을 받는 거다. 그치 그게 맞지.
다만 이 얘기 들었을 때 BL 독자층이 진짜 연배가 좀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무래도 위에 얘기한 작품의 주요 감성이 사회경험이 있어야 공감이 클 감성인지라, 이 작품이 다른걸 다 제치고 대상반열이라고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이가 최소한 나보단 많을 텐데 말이다. 이 바닥이 그냥 어릴 때부터 접해온 우리 세대를 마지막으로 신규유입없이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닐련지... (사실, 미래 세대가 정말 남녀평등과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없는 가치관으로 자란다면, BL의 존재 자체와 장르 특성이 너무나도 기이해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하기도 한다.)
Character (vs. 드라마)
노즈에 사나에
위에서 이미 너무 노즈에 중심으로 풀어서 막상 캐릭터 소개를 따로 할게 없네.... 우리 주인공 노즈에는 일단 매우 동안의 귀여운 아저씨다. 그러나 직장에서 존경받으며, 욕심없이 살아가며, 사회적 선배로서 확실하게 멋진 어른의 포인트가 있다. 다만, 그 결과 본인의 속이 곪아가고 있었다는 게 이 작품의 시작이란 게 너무 좋은 점. 그리고 끝내는 어른에 걸맞는 성장의 걸음치를 보여준다. 아......진짜 작품에 명대사가 너무 많은데.....ㅠㅜ 노즈에는 독백에도 특히나 주옥같은게 많고ㅠㅜ 그래도 하이라이트를 뺄 수가 없다. (스포 싫으시면 흐린 눈 ㄱㄱ)
"좋든 나쁘든 네 인생의 일부가 될 각오는 되어 있어.
네가 모르는 새로운 행복을 나도 똑같이 알고 싶어. 너를 좋아해."
노즈에의 드라마 배우 분은 놀라운 싱크와 연기로 120% 만족이다. 원작처럼 마냥 어리고 귀여워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지만, 더 현실적으로 연륜있는 직장선배, 나이에 맞는 고민을 하는 인물 특성을 잘드러내고, 분명하게 매력있는 캐릭터로 찰떡 연기하셨다.
토가와 미노루
치루치루 보니 '최상의 연하'란다. 격공x10000 한다. 일단, 비주얼부터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정면보다는 측면 샷들이 확고한 내 최애 취향의 계보다. 그리고 보통 연하공의 매력이 댕댕미가 많지 않나, 그쪽과는 확실히 노선 다르다. 10살 위 선배를 치밀하게 봐오면서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생각의 깊이가 미친 매력. 그럼에도 젊은 추진력과 패기는 살아있어서 밀어붙일 줄 안다. 공들여서 무리수 없는 선을 천천히 타는 게 좋았고, 그럼에도 역시 중요할 때는 결정적 한 방!....을 하지만 이조차도 대책없는 뻔할 뻔자가 아니라, 현실적인 심리로 차분히 다루어져서 정말 너무 좋았다.
"아직 서른아홉이니까 후회도 중요한 연료라고요,
저는 도와드리고 싶어요, 노즈에씨가 연료를 태워서 행복해지는 걸"
너무 (측면)비주얼을 좋아한 캐릭터라 드라마 캐스팅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음 일단 머리가 길어서 슬픈데, 옆머리 짧게 연기하셨으면 어땠을까ㅠㅜ 그럼 재평가 해볼게..... 개인적으로는 옹성우나 허광한 쪽을 생각한거 같은데 찾아보니까 개과 비주얼을 원했나보다.
서로 달리 성숙한 이들 사이, 심장이 아리는 연애
그리고 대망의 2권, [올드패션컵케이크 with 카푸치노] 에 와서는 동성의, 상사-부하 간의, 사내연애라는 환경에서 나오는 사무치는 연애 스토리를 그려낸다. 개인적으로는 2권 내용에서 감정적으로 정점을 찍는다고 느꼈고, 그 감동은 십수년 간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인생 1위 만화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였다.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가 "......"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말삼킴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로 삼킨 말일 수도 있고, 아니 사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삼킨 말 일 수도 있다. 이 말삼킴들이 만드는 적막들은 진정한 현실감을 만들고, 작은 모션과 표정들까지 모든 것에 집중하게 하며, 숨막히는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새벽에 건들였다가 이 감정선을 끊어야되는데 끊지를 못하고, 끝까지 음미하면서 달려버렸다. 찌통에 몸부림치고, 목이 매여 끄윽끄윽하면서 보았다.(다행히 다음날 출근 걱정이 눈물과 콧물은 막아주더라...)
2권에 와서야 한마디로 정리 된, 이 작품에서 내가 감동해마지 않는 깊은 감성은 '멋진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통찰이다. 작품에서 노즈에가 필요로 하는 성장들은, 액면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타성, 비의존적인 자립성, 사회순응이 멋진 어른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여기에 먹먹하고 사무치게 공감하고, 자기반성을 하면서 작품을 곱씹으며 읽어 왔다. 이 시대의 멋진 어른은... 책임과 포기를 알며, 스스로를 완성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노즈에는 끝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도록,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자기자신에게 더 나은 노즈에로서 한번 더 성장한다.
부디 노즈에의 마지막 고백에 당도하시어 이 가슴 벅벅치게 되는 사무치는 찌통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다.
"나는 나 자신이 징그러워......생판 남이 날 보고, 내 얘기를 들으면 날 그냥 징그러운 아저씨로 보겠지. 하지만 나는 너의 시선과, 네가 해주는 말을 믿을게. 이제부터는 언제 어디서 뭘하든, 네생각을 할거야......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부하인 너랑, 지금 이러고 있는 너랑 함께 고민할 거야......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네가 가장 뚜렷한 현실이야. 나랑 함께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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